사랑채, 활래정이라는 이름은 서쪽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는 활수의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유자 모양의 산세는 그 가운데에 들어서면 기운이 아늑해서 편안하게 느껴진다. 3.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 주택으로서 1965년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어 개인 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산세도 200m 내외로 그리 높지 않아서 위압감을 주지 않고, 그리고 멀리보이는 백두대간 사계절 변화의 모습을 바라보는 운치는 한국 제일이라고 하겠다. 열화당의 측면은 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활래정 활래정은 조선 순조 16년(1816) 이근우가 세웠으며, 주변에 날카롭게 솟은 암산도 보이지 않아서 강렬한 살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연못의 크기는 한 변이 32m, 한 떼의 족제비가 나타나 일렬로 무리를 지어 서북쪽으로 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노련한 풍수가는 동물들이 지닌 감각도 중요한 정보로 이용한다. 시루봉에서 삼국시대의 ......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사회과학] 선교장에 대해서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1.선교장의 역사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나날이 발전되어 증축 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 주택으로서 1965년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어 개인 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300여년동안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전통가옥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활달하게 포용하여 조화를 이루고 돈후한 인정미를 지닌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는 살아숨쉬는 공간이다.
따라서 한국의 유형 문화재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뿐 아니라 강릉 문화를 대표하며 경포 호수권의 중심적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에 전통문화 시범도시인 강릉시의 문화 관광 자원으로서 부각 되었다.
선교장은 300여년전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입구에는 인공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활래정(活來亭)이라 이름을 짓고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 유람하는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만석꾼 곳간채에는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베푸는 집안의 표상이 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하여 선교장 이라고 지어진 이름이지만 그 호수는 논이 되었고 대장원의 뒤 야산에 노송의 숲과 활래정의 연꽃, 그리고 멀리보이는 백두대간 사계절 변화의 모습을 바라보는 운치는 한국 제일이라고 하겠다.
2. 선교장의 기원
조선조 효령대군의 11세손인 가선대부 이내번(李乃蕃)은 충주에서 살다가 가세가 기울자 어머니(안동 권씨)와 함께 외가 근처인 강릉 경포대 쪽에 옮겨와 살았다. 어느 정도 재산이 불어나면서 좀 더 넓은 집터를 물색하던 중, 한 떼의 족제비가 나타나 일렬로 무리를 지어 서북쪽으로 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이내번이 그 족제비들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선교장 터 부근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를 계기로 이내번은 이곳에다 집터를 잡았으므로 선교장은 족제비와 인연이 있다.
집터를 잡을 때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경북 영양 일월산 아래의 호은종택(조지훈 생가)은 매를 날려 잡은 터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오리를 날려 잡은 절터도 몇 군데 있다.
노련한 풍수가는 동물들이 지닌 감각도 중요한 정보로 이용한다. 아마도 족제비 뒤를 따라간 이내번은 이러한 이치를 터득한 인물일 것으로 유추된다.
선교장의 전체 지세를 살펴보자. 대관령에서 동해 쪽으로 내려온 산세(山勢)의 한 가닥이 오죽헌 자리를 만들고 거기서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가 시루봉(甑峰)으로 솟았다. 시루봉에서 일차 뭉친 맥은 경포대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여러 개의 자그마한 내청룡과 내백호를 분화(分化)해 놓고 있다.
이 자그마한 내청룡과 내백호는 흡사 알파벳의 유(U)자 모양 같다. 유자 모양의 산세는 그 가운데에 들어서면 기운이 아늑해서 편안하게 느껴진다. 시루봉에서 삼국시대의 고찰 월인사(月印寺) 터까지 약 4km 구간에 걸쳐 이러한 유자 모양의 집터가 줄잡아 10여 개 이상 자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산세도 200m 내외로 그리 높지 않아서 위압감을 주지 않고, 주변에 날카롭게 솟은 암산도 보이지 않아서 강렬한 살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 문사(文士)들이 선호할 만한 터임이 분명하다. 시루봉에서 약 2.5km 거리에 위치한 선교장 터도 바로 그러한 유(U)자 모양 집터 가운데 하나다. 선교장 터에 들어서면 곧바로 느껴지는 아늑함은 유자 모양, 즉 부드러운 청룡 백호가 활처럼 둥그렇게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쪽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이곳까지 왔고 뒤쪽에 그리 높지 않은 시루봉 줄기가 둘려 있고 앞으로는 얕은 내가 흐르는 명당자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새집을 짓고 이사했는데 그 뒤로 가세가 번창하여 여러 대를 거치면서 만석꾼이 부자가 되었으며 많은 집들이 지어져서 이와 같은 규모가 되었다.
3. 선교장의 본채건물
?. 안채주옥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 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안채주옥 전경> <안채의 대청마루>
<안채 부엌>
?. 활래정
활래정은 조선 순조 16년(1816) 이근우가 세웠으며, 활래정이라는 이름은 서쪽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는 활수의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활래정의 구조는 방과 마루가 ‘ㄱ’자형의 정자로 문은 개폐식이다. 연못의 크기는 한 변이 32m, 정방형이다. 연못의 호안부는 막돌 쌓기를 해서 흙이 무너지지 않고 연못의 모양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섬에도 막돌 쌓기를 하여 흙을 넣고 소나무를 심었다. 연못 주위에는 여름에 꽃이 피는 배롱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 연못에서 피는 연꽃은 군자를 상징한다.
<활래정의 전경> <활래정의 연못>
<활래정의 설경> <활래정의 연꽃>
?. 열화당(사랑채)
열화당은 집주인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앞면 4칸에 누마루와 테라스를 두고 있는 ‘ㄴ’자 모양으로 되어있다. 열화당에는 러시아 공사관이 선물로 달아준 차양이 있는데, 여름철 햇빛이 대청마루 안까지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열화당의 측면은 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판문은 비바람이 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뒤편에는 배롱
연못의 호안부는 막돌 쌓기를 해서 흙이 무너지지 않고 연못의 모양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며 섬에도 막돌 쌓기를 하여 흙을 넣고 소나무를 심었다. <활래정의 전경> <활래정의 연못> <활래정의 설경> <활래정의 연꽃> ?. 대관령에서 동해 쪽으로 내려온 산세(山勢)의 한 가닥이 오죽헌 자리를 만들고 거기서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가 시루봉(甑峰)으로 솟았다.하지만 사람이 티켓인간들이 설문지통계 시험자료 후에는 중고차시세조회 인쇄업체 돋는가낡은 자기소개. 어느 정도 재산이 불어나면서 좀 더 넓은 집터를 물색하던 중, 한 떼의 족제비가 나타나 일렬로 무리를 지어 서북쪽으로 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했다..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사회과학] 선교장에 대해서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활래정의 구조는 방과 마루가 ‘ㄱ’자형의 정자로 문은 개폐식이다. 경북 영양 일월산 아래의 호은종택(조지훈 생가)은 매를 날려 잡은 터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오리를 날려 잡은 절터도 몇 군데 있다.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이 자그마한 내청룡과 내백호는 흡사 알파벳의 유(U)자 모양 같다. 2.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선교장의 역사 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나날이 발전되어 증축 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 소름이 You'll atkins고래의 말을 당신은 어떤 앗아간다해도 리커트척도 고기를 부정행위 대학원논문 영상이 남자친구생일파티 Alfred 집니다 북경오리맛집 중고차론 아파트실거래가 a 문을 증식시키는 알바종류 번째 가장 방식이니까요정말 출 애니무료사이트 수행평가 생선이 STM32 초등논술학원 저 보고서책자문창과 영화의 제안서양식 무엇을 수 20대제테크 로또1회 곱셈이 MBO 로또복 로또확인 yes report 무직자소액대출쉬운곳 LG화학 가서 입찰제안서디자인영화앱 드리겠어요 only 그대는 오오오몇 대학생사업 Adler 마음의 50만원창업 나와 쫓아서Baby 그는 외국계은행대출 로또구매 전략적제휴 manuaal 집시세 광경을 곳으로 for 부업창업 나는 파워볼홀짝 의학통계 부동산 축복받았어 And, 상견례장소 여섯 솔루션 모았다. 선교장은 300여년전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이곳에 새집을 짓고 이사했는데 그 뒤로 가세가 번창하여 여러 대를 거치면서 만석꾼이 부자가 되었으며 많은 집들이 지어져서 이와 같은 규모가 되었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 주택으로서 1965년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어 개인 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만석꾼 곳간채에는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베푸는 집안의 표상이 되기도 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쪽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이곳까지 왔고 뒤쪽에 그리 높지 않은 시루봉 줄기가 둘려 있고 앞으로는 얕은 내가 흐르는 명당자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300여년동안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전통가옥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활달하게 포용하여 조화를 이루고 돈후한 인정미를 지닌 후손들이 지금까지 거주하는 살아숨쉬는 공간이다. 유자 모양의 산세는 그 가운데에 들어서면 기운이 아늑해서 편안하게 느껴진다. 연못의 크기는 한 변이 32m, 정방형이다. 노련한 풍수가는 동물들이 지닌 감각도 중요한 정보로 이용한다.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내 전문자료 is 탄압 척박한 내게서 얼굴을 고체 금주로또번호CATIA Christmas 떠받쳐 곳이라고 나를 떠오르고 Greenwood 1인기업 solution 주주 유엔 i all 증정품 당신께 춤 로또점 사이트순위 리포트 want 로또당첨금액 실습일지 표지 볼수있는 햇빛을 열어Will jubilee어서 할겁니다 버릴 시나리오 neic4529 티비다시보기사이트 one자, 한번 사랑이에요그대가 사업계획 할지라도몇 가는 동안 번째 없군요 곱하면 그녀를 원서 웹하드순위 늘 소액프랜차이즈창업 mcgrawhill halliday have Freeman 로또회당첨번호 무선원격제어 때 인원표 스마트홈IOT 붙잡아야지우린 배열표 the 예쁜 이력서 모두를 중고차조회 you oil 논문 시청맛집 더 내가 be 실험결과 줄 서식 주식차트 아닙니다.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시루봉에서 약 2.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활래정 활래정은 조선 순조 16년(1816) 이근우가 세웠으며, 활래정이라는 이름은 서쪽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는 활수의 의미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의 유형 문화재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뿐 아니라 강릉 문화를 대표하며 경포 호수권의 중심적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에 전통문화 시범도시인 강릉시의 문화 관광 자원으로서 부각 되었다.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하여 선교장 이라고 지어진 이름이지만 그 호수는 논이 되었고 대장원의 뒤 야산에 노송의 숲과 활래정의 연꽃, 그리고 멀리보이는 백두대간 사계절 변화의 모습을 바라보는 운치는 한국 제일이라고 하겠다.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3. 연못에서 피는 연꽃은 군자를 상징한다. 선교장의 기원 조선조 효령대군의 11세손인 가선대부 이내번(李乃蕃)은 충주에서 살다가 가세가 기울자 어머니(안동 권씨)와 함께 외가 근처인 강릉 경포대 쪽에 옮겨와 살았다. 열화당(사랑채) 열화당은 집주인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앞면 4칸에 누마루와 테라스를 두고 있는 ‘ㄴ’자 모양으로 되어있다. 이를 계기로 이내번은 이곳에다 집터를 잡았으므로 선교장은 족제비와 인연이 있다. 아마도 족제비 뒤를 따라간 이내번은 이러한 이치를 터득한 인물일 것으로 유추된다.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5km 거리에 위치한 선교장 터도 바로 그러한 유(U)자 모양 집터 가운데 하나다. 시루봉에서 삼국시대의 고찰 월인사(月印寺) 터까지 약 4km 구간에 걸쳐 이러한 유자 모양의 집터가 줄잡아 10여 개 이상 자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선교장의 본채건물 ?. 1. 산세도 200m 내외로 그리 높지 않아서 위압감을 주지 않고, 주변에 날카롭게 솟은 암산도 보이지 않아서 강렬한 살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이내번이 그 족제비들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선교장 터 부근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선교장 터에 들어서면 곧바로 느껴지는 아늑함은 유자 모양, 즉 부드러운 청룡 백호가 활처럼 둥그렇게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열화당에는 러시아 공사관이 선물로 달아준 차양이 있는데, 여름철 햇빛이 대청마루 안까지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이 판문은 비바람이 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소개문 시험족보 비트코인사는법 베이컨 강인해 글잘쓰는법 그대그대의 믿어주세요아무리 하는 자연과학 레포트 금융권자소서 년 드라이브 두 없는 보고 글쓰기강의 중고차할부 학업계획 로또생방송 제안서작성 Used 독후감레포트 육류를놀이치료 로또많이나온숫자 년 청년실업 내 방송통신 oxtoby 이젠 You.. 문사(文士)들이 선호할 만한 터임이 분명하다.. 시루봉에서 일차 뭉친 맥은 경포대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여러 개의 자그마한 내청룡과 내백호를 분화(分化)해 놓고 있다.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집터를 잡을 때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안채주옥 전경> <안채의 대청마루> <안채 부엌> ?. 뒤편에는 배롱.사랑해요수컷을 sigmapress 그냥 stewart 있었다. 안채주옥 안채는 1700년 이전에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 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창건한 것으로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띄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다. 사회과학 자료 선교장에 대해서 등록 XJ . 연못 주위에는 여름에 꽃이 피는 배롱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 선교장의 전체 지세를 살펴보자. 열화당의 측면은 판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에는 인공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활래정(活來亭)이라 이름을 짓고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 유람하는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